2025가 끝나고 하반기를 돌아보았다.
엄마와 함께 유럽 여행
2025년 하반기에 가장 뜻깊었던 일이라면 엄마와 단둘이 유럽 여기저기를 다닌 것이다.
스무살 되고 나서 본가와 먼 학교에서 자취하며 지내다보니 성인 이후 부모님과 교류가 적었다. 그래서 나 자신에 대해서 알아갈 시간은 많았지만 부모님에 대해서 알아갈 시간은 적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해외살이를 시작하게 되었고, 부모님은 많은 걱정을 하며 나를 보내주셨다.
그렇게 3개월 정도가 지나 엄마가 시간 여유가 생겨 유럽에 놀러오게 되었고, 내친김에 2개월 넘게 독일 살이를 결정하셨다.
엄마와 시간을 보내면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엄마의 강인함이다. 워낙 안정성을 추구하시고 소녀같은 분이라 유럽 살이가 괜찮으실 지 걱정했는데, 필요한 것만 몇 개 알려드리니 혼자서 너무 잘다니셔서 놀랐다. 연고도 없는 곳에서 독일 근교로 혼자 1박 2일을 다녀오시거나 한인 교회를 찾아서 다녀오시는 등 내가 굳이 챙겨드리지 않아도 하루하루를 잘 보내시는 걸 보고 엄마가 생각보다 강한 사람이구나 생각했다.
엄마 덕분에 한식도 엄청 먹었다. 재택할 때마다 오셔서 좋아하는 반찬으로 점심을 차려주시고, 내 친구들을 불러 서너번 저녁을 차려주시기도 했다. 아플때는 삼계탕도 해주셨다. 언어가 잘 통하지 않아 힘드셨을텐데 직접 약국에서 내 증상에 맞는 약을 사와주신 것도 무지 감동이었다. 항상 김치를 사먹어야해서 돈이 많이 들었는데, 내 친구들과 함께 대규모 김장을 해주고 가셔서 4개월 넘게 엄마가 만든 김치로 먹고 살았다. ㅎㅎ 이사도 도와주시고 의자나 자전거와 같이 부피가 있는 중고거래 할때도 같이 가주셨다.
해외여행도 함께 다녀왔다. 프라하, 부다페스트, 리스본을 같이 다녀왔고 엄마 혼자서는 폴란드, 함부르크를 다녀왔다. 새로운 곳을 여행하는 곳을 정말 좋아하셨고 또 독일에서 지내는 아날로그스러운 평온한 일상도 좋아하셨다. 그런 엄마를 보면서 유럽에 먼저 와서 정착한 다음 엄마가 여기서 생활하고 여행하는 것을 도와줄 수 있다는 것에 뿌듯했다. 솔직히 일하느라 엄마랑 시간 보내느라 바쁜 것도 있었고 투정도 부렸지만 지나고 나니 정말 소중했던 순간들이었다.


다시 한국으로 보내드릴 때는 조그만 선물과 함께 편지를 써드렸다.

자존심 강한 경상도 여자 둘은 공항에서 절대 서로 우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지만, 나는 편지쓰면서도 울었고 엄마 보내고 나서도 울었다 (ㅋㅋ) 엄마도 아마 편지 읽으면서 우시지 않았을까 싶다. 돈 많이 벌어서 더 많은 곳을 여행하게 해드려야겠다고 생각한 시간이었다.
두번의 이사
올해에만 네 번의 이사를 했다. 와우!
상반기에는 한국 서울 자취방을 정리하고 본가로 내려가는 이사, 그리고 베를린 첫 집에서의 이사.
하반기에는 베를린에서 주거지가 두 번 바뀌어서 두 번의 이사를 했다.
룸메이트의 아는 언니가 사는 집의 세입자로 들어가 Zelendorf라는 지역에서 5개월 정도를 살았다. 앰뷸런스와 자동차 소리, 술집의 시끄러운 소리가 밤마다 들리던 도시에서 살다가 한적하고 아파트 없이 단독 주택만 있는 남서 지역에 오니 좋았다. 중고 자전거를 사서 타고 다녔고, 여름이면 집 근처 호수에 가서 수영했다. 재택하는 날에는 햇살을 쬐며 마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러나 모종의 이유로 이사를 해야했기 때문에 한국에 다녀오는 2개월 동안에는 새 집을 알아보았다.
친구들과 함께 네명이서 살 집을 찾다보니 Lichtenrade라는 지역의 비슷한 결의 2층짜리의 단독 주택으로 집을 구하게되었다. 아직 공사도 끝나지 않은 집이었으나 가격, 회사와의 거리, 집 근처의 분위기를 고려해서 좋은 집이라고 생각해 계약하였다. 공사가 끝난 상태에서 이사하고 나니 정말 집을 잘 구했다고 느꼈다. 바로 옆집에 사는 친절한 집주인분, 예쁜 인테리어, 넓은 거실과 부엌, 마당, 예쁜 뷰 .. 그리고 무엇보다 가구가 다 준비된 상태인게 대박이었다. 저렴한 가격에 너무 좋은 집을 저점매수했다는 것이 뿌듯했다. 그리고 내 방은 2층이고 테라스도 있다 !!!!!
최근에는 눈이 많이 왔는데 창밖의 눈 쌓인 풍경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이 집에 오래오래 살고 싶었다. 별 보는 것에 취미 없었는데, 여기 이사와서 별이 너무너무 잘 보여서 별자리를 외우고 다닌다.




아무튼 지금은 좋은 집에 만족하는 가격으로 살고 있어서 다행이다. 역마살 레전드인 한 해를 보냈다. 이제 이사는 그만하고 싶다.
1인분 하는 개발자 되기
상반기에 어영부영 1인분도 못하던 시절을 생각해보면 그래도 꽤나 성장했던 하반기가 아닐까 싶다.
내가 원하는 방향의 성장에 대해서 많은 고민이 있었지만, 결국에는 현재 회사에서 할 수 있는 성장에 초점을 맞추자는 결론으로 귀결되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을 잡으니 일이 재미있어졌다. 처음이라 답답한 부분도 많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일이 손에 익고, 무언가를 주도적으로 진행하기 위한 허들도 많이 낮아졌다. 하나의 업무를 처리하기도 벅찼었는데 여러개의 업무를 병렬로 진행해도 무리가 없다. 아니, 오히려 그렇게 하는 게 더 좋았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스스로 발전하고 있었다.
도메인을 이해하면서 우리 팀의 백그라운드에 대해 몰랐던 세계를 차츰 알아가는 것도 재미있고, 맡은 부분에 대해 끝까지 드라이브하기 위해 몰입하는 즐거움도 있었다. 백엔드 개발자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의 난이도가 쉬워지고 1인분을 할 수 있게 된 건 영어 실력이 늘은 덕분도 있다. 영어권 국가에서 살고 있고 글로벌 회사에서 일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영어를 할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다. 환경에 던져지는 것은 운이지만 환경에서 원하는 성장을 하는 것은 본인 의지인 것 같다. 그래도 나름 영어로 회의하고 영어 공부를 따로 한 덕에 실력이 많이 늘었다. 원어민과 캐주얼 챗을 하는 것에는 무리가 없다.
앞으로는 조금 더 주도적인 팀원이 되기 위해 자신감과 영어 실력을 더 늘리는 것이 목표이다. 그리고 업무도 지금처럼 번아웃 오지 않게 잘 조절하면서 열심히 하고싶다.
독일어 학원 다니기
새로 시작한 공부가 있다면 독일어 공부이다.
11월부터 2개월 간 꽤나 빡센 독일어 학원을 다녔다. 왜 독일어를 배우는가, 라고 물어보면 딱히 할 말은 없다. 일상에서도 독일어 쓸 일이 많이 없고 회사에서도 영어를 쓰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일에서 독일어 배우는 건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수업 듣는게 좀 힘들긴 했지만 독일어 자체는 재미있는 것 같다. 식당에서 주문할 때 아주 간단한 독일어로 주문할 수 있는 것도 성과라면 성과다.
2026 Q1에 독일어 A1 자격증을 따는 것이 목표이다.



취미 굳히기
상반기에는 사람들과 이것저것 새로운 취미를 많이 시도해봤다면, 하반기에는 내 취미는 이거다! 할 수 있을 정도로 특정 활동에 시간을 많이 들였다.
첫 번째는 요리이다. 먹는 거 좋아하는 나는 독일에서도 먹고싶은 것이 참 많아서 이것저것 많이 해먹었다. 그러다보니 스스로 오? 싶을만큼 요리 실력이 늘었고 이제 레시피 쓱 참고하고 내 맘대로 계량해서 요리하기도 한다 (!!!) 엄청 큰 변화이다. 사람들 불러서 맛있는 거 대접해주기도 한다. 개발할 때도 혼자서 몰입하는 것이 재미있는데, 요리도 마찬가지이다. 혼자서 노래들으면서 요리하다보면 잡생각이 사라진다. 흑백요리사도 정말 재미있게 보고 있다.
두 번째는 운동이다. 요즘은 매주 수영, 배드민턴을 간다. 수영은 새로 시작했다. 호흡하는 거부터 시작했는데 2개월 정도 지나 이제 자유형을 어설프게 할 수 있다. 매주 수영 갈 때마다 실력이 느는게 느껴져서 재미있다. 배드민턴은 원래도 쳤지만, 같이 치는 사람들이 너무 잘치는 사람들이라 나도 덩달아 실력이 올라간다. 그냥 배드민턴도 재미있는데, 재미있는 사람들과 재미있게 치니 더 재미있다.
취미라는 걸 모르고 살았는데 직장인 되고 시간 여유가 생기니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알게 되는 게 좋다.
한국 다녀오기
3월 베를린에서 일을 시작한 이후 한국이 너무 그리웠다. 4월 즈음에 8월 말에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 티켓을 예약했다.
막상 한국 갈 때가 되니 독일에서 적응한 일상을 벗어나는 게 아쉽기도 했었다. 한국 가서 보고싶었던 사람들을 잔뜩 만나고 왔다. 나름 독일에서 한식 맛있게 해먹고 다녔다고 생각했는데 한국에서 사먹는 한식은 너무 맛있다. 한국에서만 살 수 있는 화장품이나 겨울 옷들을 구매하고 캐리어에 꽉꽉 채워 들고왔다. 옷, 물건들을 모두 한국 제품으로 사용하고, 소중한 사람들도 다 한국에 있는 상황에서 타국에서 생활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다시 베를린으로 돌아왔을 때는 타국 생활에 대한 현타를 느끼기도 했다. 나고 자란 국가에서 살고있지 않다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조금이라도 결핍이 있는 상태로 지낼 수 밖에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일상을 불편하게 하는 결핍이 있기도 하지만 나를 더 알아가고 성장시키는 결핍도 있다. 하지만 국내든 외국이든 항상 처한 상황에서 결핍은 있기 마련이고 그걸 초연하게 받아들이냐 나를 괴롭히는 요인으로 쓰이냐는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것 같다.
아무튼 한국을 다녀오고 느낀 것은 타국에서의 삶은 힘든 게 당연하고 한국에서 살고 일해도 힘든 게 있었을 거라는 거다. 그래서 타국에서 힘들다는 거를 너무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초연하게 할 일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앞으로의 길이 펼쳐질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는 것을 남기고 싶었다.
다음 해에는,
업무 외에도 개인적인 개발 공부에 시간을 많이 투자하고 싶다. 스터디를 하는 것도 좋고, 마감기한을 정해두고 책을 읽는 것도 좋다.
업무와 관련된 분야를 공부하면서 '그냥' 일하는 것이 아니라 알아가고 배워가며 일하고 싶다.
새로운 환경에 대한 적응이 얼추 되니 일상에 대한 컨트롤이 조금 더 쉬워지고 있다. 쓸모없는 활동에 시간을 쓰지 않고, 내가 이루고 싶은 것을 잘 정리해서, 하나하나 이뤄가는 알찬 한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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